[윤병운의 세상이야기] 동전주·한계기업의 종말, 코스닥 ‘상폐 살생부’가 던진 엄중한 경고

 

동전주·한계기업의 종말, 코스닥 ‘상폐 살생부’가 던진 엄중한 경고

국내 자본시장의 허리이자 혁신 기술기업의 요람으로 불리던 코스닥(KOSDAQ) 시장이 전례 없는 대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공언했던 상장폐지 기준 강화안이 마침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돌입하면서, 시장에는 이른바 상폐 살생부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주가 1,000원 미만의 이른바 동전주와 시가총액 200억 원 미만의 저평가·영세 기업들이 무더기로 상장폐지 심사대에 오르게 되었다.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인 퇴출 절차가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거래소가 당초 예상했던 88개 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의 기업들이 단두대에 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야말로 코스닥의 전면적인 구조조정, 빅 뱅(Big Bang)이 시작된 것이다.

꼼수와 생존의 기로: 통계가 증명하는 한계 기업들의 단면

벼랑 끝에 몰린 한계 기업들의 생존 몸부림은 이미 차가운 통계 수치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주식병합의 폭증이다. 상장폐지 기준 강화안이 최초 발표된 지난 2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코스닥 시장 내 주식병합 건수는 무려 188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했던 단 8건과 비교했을 때 23.5배라는 기록적인 폭증세다.

주식병합은 여러 개의 주식을 하나로 합쳐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예컨대 500원짜리 주식 2개를 합쳐 1,000원짜리 한 주를 만드는 식인데, 이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나 펀더멘탈(기초체력) 개선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직 1,000원 미만 동전주 퇴출이라는 단기적인 규제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꼼수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의 책임 경영과 지배구조를 대변하는 대표이사 변경 공시 역시 지난해 231건에서 올해 260건으로 12.6% 증가했다. 침몰해 가는 배의 선장을 바꾸듯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대외적으로 표방하며 규제 당국에 개선 의지를 피력하려는 의도가 짙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 공시의 급증이다. 통상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공급계약은 주가를 견인하는 강력한 호재성 재료로 작용한다. 이 공시 건수가 지난해 399건에서 올해 상반기 631건으로 58.1%나 급증했다. 평소라면 축하해야 할 기업의 성장 신호겠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상장폐지와 시가총액 미달을 모면하기 위해 무리하게 계약을 체결하거나, 심지어 실현 가능성이 불분명한 공시를 남발하여 주가를 부양하려는 외화내빈(外華內貧)식 처방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체질 개선인가, 투자자 독박인가

이번 코스닥 구조조정의 핵심 명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와 시장의 투명성 강화다. 그동안 실적도 없고 비전도 없으면서 좀비처럼 연명하며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을 빨아들이던 한계 기업들을 과감히 쳐내야만, 시장 전체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건전한 혁신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간다는 논리다. 백번 옳은 말이다.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이다.

하지만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그 부작용과 통증은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개미)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문제다. 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주식병합이나 호재성 공시 남발로 연명하는 과정에서 변동성은 극대화된다.

시장 불균형의 딜레마 벼랑 끝에 선 기업의 주가는 하루는 상한가, 다음 날은 하한가를 오가는 폭탄 돌리기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이 뒤늦게 저평가된 호재 기업이라는 착시 효과에 속아 막차를 탔다가 상장폐지라는 가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는 자본시장 전체의 또 다른 비극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증시 역사를 돌이켜봐도 퇴출 직전 기업들의 공시 난발과 대주주 지분 매각, 잦은 경영진 교체는 전형적인 상폐 전조 증상이었다. 지금 코스닥 시장에서 벌어지는 통계적 이상 현상들은 기업들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중환자들이 산소호흡기를 달기 위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필자의 제언: 소나기 이후를 준비하라

지금의 대혼돈은 규제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일시적 소나기 국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한국 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한 진정한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의 보완이 시급하다.

  • 첫째, 당국의 정밀하고 엄격한 사후 모니터링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공급계약 공시 중 허위·과장 공시가 없는지, 주식병합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세력의 개입은 없었는지 금융감독원과 거래소는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꼼수로 위기를 모면한 기업이 내년에 다시 좀비 기업으로 회귀한다면 이번 상폐 드라이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둘째, 투자자들의 철저한 안구 정화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주가가 싸니까 언젠가 오르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1,000원 미만 동전주를 매수하는 투기적 접근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기업의 시가총액이 200억 원을 밑돈다면 그것은 시장이 부여한 위험 등급 판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코스닥 시장의 상폐 살생부는 시장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New Normal)의 시작이다. 한계 기업들의 단기적인 생존 게임과 잔기술에 현혹되지 않고, 진짜 실적과 지속 가능한 비전을 가진 유망 기업을 선별해내는 혜안만이 이 대혼돈의 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무기다. 바야흐로 코스닥은 가짜와 진짜가 갈라지는 거대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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